칼을 만든 사람이 칼집을 이야기할 때
신고 마감이 지나고 사무실이 조금 조용해진 오후, 미뤄 두었던 문서 하나를 펼쳤다. AI를 만드는 회사, 앤트로픽이 얼마 전 내놓은 경제정책 제안서였다.
AI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이야기는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뉴스에서도, 술자리에서도, 우리 같은 사무실 안에서도 이미 다들 아는 이야기다. 그러니 이 문서에서 놀란 건 그 내용이 아니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냐였다.
AI를 팔아서 돈을 버는 회사가, 자기 제품이 사람의 일자리를 없앨 수 있다고 정부에 정식 문서로 써서 내놓은 것이다. 자동차 회사가 먼저 나서서 속도 제한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칼을 만드는 사람이 칼집부터 이야기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회사가 걸어온 길을 떠올려 보면, 이상하게도 아주 뜻밖의 일은 아니었다.
앤트로픽은 오픈AI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나와서 세운 회사다. AI를 얼마나 빨리 만들어 내놓느냐보다, 얼마나 안전하게 만드느냐를 먼저 따지겠다는 것이 출발점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회사 형태도 주주의 이익만이 아니라 사회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도록 정해 둔 공익기업으로 택했다.
나는 그 결정을 도덕의 언어로 읽어 보고 싶었다. 의사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원칙이 있다. 무엇보다 먼저, 해를 끼치지 말라. 검증되지 않은 약을 빨리 팔겠다고 환자에게 먼저 쓰는 의사는 없다. AI를 만드는 사람들도 비슷한 무게를 느꼈던 것 아닐까. 만들 수 있으니까, 남보다 빨리 만들어야 하니까 일단 내놓는다는 흐름에, 누군가는 한 번쯤 멈춰 서서 이게 맞느냐고 물어야 한다는 생각. 그 물음이 한 회사를 세울 만큼 무거웠던 것이리라.
그 시선으로 다시 보면 이 문서가 달리 보인다. 처음에 이 회사가 걱정한 것은 기술 그 자체의 위험이었다. AI가 잘못 쓰이거나, 사람의 손을 벗어나는 것. 이번 문서는 같은 걱정이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술이 사람들의 밥벌이에 주는 충격까지 닿은 것이다. 기계가 사람을 해치지 않게 하자는 이야기가, 기계 때문에 사람들의 삶이 무너지지 않게 하자는 이야기로 넓어졌다.
시대가 그렇게 흘러왔다. 몇 년 전만 해도 AI는 연구실 안의 이야기였다. 이제는 우리 사무실 책상 위에서 매일 서류를 읽고 숫자를 맞춘다. 문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벌써 AI에 많이 노출된 직종에서 막 사회에 나온 젊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덜 늘고 있다고 한다. 기술이 사람들의 일상에 이만큼 들어왔다면, 그 기술을 만든 사람들이 그 결과에 대해서도 말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문서는 누군가 선의로 한 번 써 본 글이라기보다, 나올 수밖에 없었던 글에 가깝다.
읽어 보니 말만 앞세운 글도 아니었다. 자기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제안들이 곳곳에 들어 있었다.
AI 회사들이 자기 제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정부에 보고하게 하자고 했다. 그 대상에 자기 회사도 들어간다고 굳이 적어 두었다.
충격이 경기 침체 수준으로 커지면, 기업들이 사람을 대체하는 속도 자체를 정부가 조절하는 규제도 지지하겠다고 했다. 한 회사만 혼자 속도를 늦추면 시장을 남에게 내줄 뿐이니,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경쟁하는 회사 입장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세금 이야기는 더 놀라웠다. 사람이 벌어들이는 몫이 줄고 기계와 자본의 몫이 커지면, 지금의 세금 구조로는 필요한 재원을 걷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짚는다. 그 대안으로 AI를 얼마나 썼는지, 이를테면 AI가 처리한 글자 단위나 계산량에 세금을 매기는 방법까지 후보로 거론하고 있었다. 자기 매출의 원천에 세금을 매기자는 이야기를 스스로 꺼낸 것이다. 그리고 어떤 방식이 되든 공정한 몫을 낼 준비가 되어 있다고 굵은 글씨로 적어 두었다.
나는 이것이 AI를 만드는 회사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착해서만이 아니라, 그래야 그들도 살아남기 때문이다. 사람들 손에 돈이 돌지 않으면 경제는 멈추고, 물건도 서비스도 살 사람이 없어진다. 그렇게 망가진 경제 위에서는 AI 회사도 결국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다. 도덕과 생존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드문 순간이다.
이 문서가 앞으로 중요해질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다. AI가 세상을 더 부유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건 이제 누구도 크게 의심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부를 누가 나눠 갖느냐다. 그 질문을 정부나 학자가 아니라 기술을 만드는 쪽에서 먼저 던졌다는 것. 앞으로 다른 회사들도 이 질문을 피해 가기 어려워질 것이다. 세금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세금이 무엇에 매겨지느냐가 사회의 모양을 바꾸는 질문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지금을 사는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문서는 정부를 향해 쓴 글이지만, 기업에 건네는 말도 있었다. AI로 같은 일을 더 적은 사람으로 할 수도 있고, 같은 사람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 AI 덕분에 생긴 여유를 사람을 줄이는 데 쓸지, 그동안 손이 모자라 못 하던 일에 쓸지 미리 정해 두라는 것. 작은 사무실을 꾸리는 나에게도 그대로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요즘 나도 일하면서 느낀다. 예전 같으면 신입 직원이 몇 년 동안 손으로 익히던 일들이 있었다. 자료를 옮겨 적고, 숫자를 맞춰 보고, 서식을 채우는 일. 지루했지만 그 과정에서 감각이 생기고, 그 감각이 쌓여 결국 판단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그 일의 상당 부분을 AI가 먼저 해낸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가 감각을 배울 자리를 새로 만들어 주는 것도 일을 맡기는 사람의 몫일 것이다. 기술을 만든 회사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 기술을 쓰는 나에게도 작은 책임은 있는 셈이다.
개인에게도 같은 이야기다. AI를 쓰면 더 빨라진다. 하지만 빨라지는 건 AI를 가진 누구나 똑같이 누린다. 중요한 건 AI를 쓰면서 더 나아지는 것이다. AI가 내놓은 답이 맞는지 가려낼 줄 아는 눈, 고객이 말하지 않은 사정까지 읽어 내는 귀, 그리고 결국 이 사람에게 맡기면 된다는 신뢰. 그런 것들은 아직 사람에게서 나온다.
물론 이 이야기를 선과 악으로만 나눌 수는 없다. 다른 쪽에도 나름의 윤리가 있다. 기술을 실험실에 가둬 두기보다 일찍 세상에 내놓고, 많은 사람이 쓰면서 드러나는 문제를 고쳐 나가는 편이 오히려 현실적이고 민주적이라는 생각이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 앤트로픽 역시 결국 큰 기업들의 투자를 받고, 시장에서 가격과 성능으로 경쟁해야 살아남는 회사다. 규칙을 먼저 제안하는 쪽이 그 규칙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짜려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을 수 있다. 문서 스스로도 가장 심각한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모른다고 털어놓는다. 이 글은 미국을 두고 쓴 것이고,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사정이 따로 있다. 그러니 이 문서가 옳은지는 앞으로 이 회사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고 판단할 일이다.
그래도 나는 칼을 만든 사람이 칼집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는 사실 자체에 점수를 주고 싶다. 만드는 사람이 먼저 걱정하는 기술은, 적어도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 기술보다는 덜 위험할 테니까.
문서를 덮고 조용한 사무실을 한 번 둘러봤다. 사람은 자기 직업보다 큰 존재라는, 문서 속 한 문장이 떠올랐다. 오늘은 AI가 대신해 준 시간만큼 조금 일찍 퇴근해야겠다. 오랜만에 가족과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일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참고한 글 Anthropic, “Anthropic’s Economic Policy Framework” (June 2026) https://www-cdn.anthropic.com/files/4zrzovbb/website/9ea607a5dd67c168093829b701f3a0a6d21156d5.pdf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적은 일기입니다.
G.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