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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 만큼 쌓이는 동전

일반적인 회사의 성과시스템에 대해 고민하다가 엉뚱한 생각을 하나 했다. 회사마다 그 안에서만 쓰는 코인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요즘 나는 일하면서 자동화나 기록 같은 것에 자꾸 손이 간다. 한 번 해둔 일이 어딘가에 남아서 다음 일을 덜어주는 게 좋다. 그런데 정작 사람이 한 일은 생각보다 잘 남지 않는다. 누가 마감을 하루 앞당겨 끝냈는지, 누가 귀찮은 일을 조용히 맡아줬는지는 연말쯤 되면 흐릿한 인상으로만 남는다.

그래서 떠올린 게 ’경력이 쌓여야 생기는 동전’이다. 비트코인이 컴퓨터가 계산을 해야 생겨난다면, 이 동전은 사람이 일을 해내고 그것이 확인되어야 하나씩 생겨난다. 한 달을 성실히 다니면 하나, 맡은 일을 깔끔히 마치면 하나, 새로운 걸 배우거나 일하는 방식을 바꿀 아이디어를 내면 또 하나. 남에게 팔거나 넘길 수는 없다. 오직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의 흔적이다.

꼭 새로운 제도를 만들 필요도 없다. 회사마다 이미 성과를 매기는 시스템이 있고, 매일 올라가는 결재가 있다. 보고서 하나가 결재를 통과할 때, 프로젝트 하나가 마무리될 때, 그 순간에 동전 하나가 조용히 따라붙기만 하면 된다. 사람들은 하던 일을 하던 방식대로 하고, 기록은 그 뒤에서 저절로 쌓인다.

그렇다면 이 동전들은 누가 지켜야 할까. 여기서 블록체인이 떠올랐다. 어려운 기술 설명은 접어두고, 나는 블록체인을 이렇게 이해한다. 무엇이든 기억하지만, 잊지도 판단하지도 못하는 공동의 기억. 한 번 적힌 것은 누구도 몰래 지울 수 없고, 특정한 누구의 장부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들고 있는 장부다. 윗사람의 기분이 좋은 날에도, 나쁜 날에도 어제 적힌 기록은 어제 그대로 남아 있다.

물론 월급을 이 동전으로 줄 수는 없다. 돈은 돈으로 주는 게 맞다. 다만 성과급을 나눌 때 “누가 얼마나 했나”를 감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인 기록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조금은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생각이 조금 더 멀리 갔다. 회사뿐 아니라 관공서에도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이 많을수록 평가는 어려워지고, 한 해 동안의 수고가 몇 줄짜리 평가표로 줄어드는 일이 흔하다. 일한 순간마다 동전이 하나씩 쌓인다면, 연말에 몰아서 하는 평가 대신 한 해의 궤적이 그대로 보일 것이다. 잊지 않는 기억이 곁에 있으니, 공정성에 대한 의심도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잠깐 먼 미래를 상상해 봤다. 누군가 직장을 옮길 때 이력서 대신 자기 지갑을 내미는 장면. 그 안에는 몇 년 동안 어떤 일을 했고, 무엇을 배웠고, 동료에게 어떤 도움을 받았다는 표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종이 경력증명서보다 훨씬 솔직한 증명서다. 어쩌면 공무원 한 사람의 수십 년 근무도 이렇게 작은 동전들로 이어진 긴 줄처럼 남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숫자로 잡히지 않는 일이 세상엔 훨씬 많다. 옆 사람의 기분을 살피는 일, 회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일 같은 것들은 동전으로 바꾸기 어렵다. 동전 개수로 사람을 줄 세우기 시작하면 오히려 사람들이 동전이 나오는 일만 골라 하게 될 수도 있다. 블록체인은 모든 것을 기억하지만 판단하지는 못한다. 무엇에 동전을 줄지, 그 동전이 무슨 의미인지는 여전히 사람이 정해야 한다. 기억은 기계에 맡기고, 판단은 사람이 하는 것. 이런 도구는 딱 거기까지여야 할 것이다.

아주 기초적인 생각이다. 그래도 가끔은 이런 작은 아이디어가 꽤 쓸모 있는 무언가로 자라기도 한다.

성과시스템을 고민하다 시작된 생각이 여기까지 왔다. 오늘 내 몫의 동전은 아마 하나쯤일 것이다. 엉뚱한 생각을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값으로.

G.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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